등산과 여행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여행과 초등 아들과 함께 한 구룡포 근대역사관

1 번 2024. 3. 2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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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포항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포항에는 일본인 가옥거리 말고도 호미곶, 영일대 해수욕장, 환호공원의 스페이스 워크, 그리고 죽도 시장등 먹을 것과 볼 것이 많은 지역입니다.

몇 년 전 방영한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드라마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 드라마 중 여명의 눈동자의 드라마 촬영한 곳도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였다고 합니다.

포항 가볼 만한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여행과  초등 아들과 함께 한 구룡포 근대역사관 여행입니다

 

그중에서도 구룡포의 일본인 가옥거리는 볼 것과 먹을 것이 같이 있는 장소입니다. 구룡포는 과메기와 대게가 많이 나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대게는 많은 사람들이 경북 영덕의 특산품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대게는 동해에 서식하는 게로 구룡포에서도 많이 유통이 된다고 합니다. 지역 상인들의 이야기로는 구룡포에서 유통되는 대게는 영덕 강구항 보다 많다고 합니다.

 

예부터 구룡포 바다는 물고기 어획량이 많은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시절 많은 물고기가 잡힌다는 소문이 일본에까지 전해져 많은 일본 어부들이 이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구룡포에 이주한 일본인들은 주로 일본 내의 조업에서 밀려난 가난한 어부들이었다고 합니다. 구룡포는 일본의 가난한 어부들의 엘도라도 같은 곳으로 기회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로 나라를 잃으면 국민들의 생활과 경재권까지고 모두 빼앗겨 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우리나라의 어부들은 일본일들에게 바다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동해의 조업권이 일본일들이 관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구룡포 일보인 가옥거리는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말아야 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소라 생각됩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구룡포 근대 역사관 

구룡포 근대 역사관입니다.  일본인 가옥거리 계단을 기준으로 왼쪽 골목 끝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가옥입니다.

가장 큰 일본가옥이면 한 때 이 구룡포 지역에서  크게 사업을 하는 일본인의 집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일본의 가가와 현에서 이주해 온 하시모토 겐키치의 집으로 이 구령포에서 많은 배를 가지고 있었던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건물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데 100년 전의 생활모습과 다양한 당시의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근대역사관 입구에서 안내를 해주시는 분도 계시는데 이날 이 집과 구룡포의 일본일들의 이야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건물은 2층 건물로 1층은 주방과 안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일본 가옥의 전통적인 모습이 그대로 잘 남아 있어 흥미로운 관람이었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라  우리나라의 주택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설명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로는 이 집을 짓는 재료는 모두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온 재료들로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이 집의 일본인 주인은 재력가로 사업을 크게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부엌과 식탁이 있었던 자리에 화장실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원래 밖에 있던 화장실이었는데 철거가 되어 버려 이곳에 

당시 재래식 화장실을 복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또 1층 당시의 부엌도 재현해 놓았습니다. 복도 끝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2 층에는 이 주택의 주인의 딸 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시모토 딸의 모습을 재현한 마네킹이 있었습니다.

2층은 주로 손님을 맞이하는 방으로 사용을 했다고 하며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2층에서 가족들이 침실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2층의 가운데 방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방이었다고 합니다.  일본도와 도자기 그리고 그림이 같은 장식품 있고 미닫이 문을 열어 2층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한 생활 물건들과 당시 시대의 책과 교과서 등 많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쉽게 볼 수 없는 물건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시대의 상황을 설명하는 자료 들고 많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구룡포 일본의 가난한 어부들의 엘도라도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일본 조업에서 밀려난 어부들은 이곳 구룡포는 황금이 가득한 엘도라도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의 어부들과 일본의 어부의 사이에는 상당한 기술의 차이가 있었고 구룡포 앞바다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가가와 현의 많은 가난한 어부들이 이곳 구룡포로 이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구룡포의 상권과 경재권은 일본인들이 쥐고 있었다고 합니다.

 

 

 

 구룡포 근대 역사관의 마지막 자료는 구룡포의 전설입니다.

신라 진흥왕 때 이곳 바다에서 10마리의 용이 승천하다가 1마리는 바닷속으로 떨어졌고 9 마리는 승천을 하여 이곳을 구룡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구룡포의 역사관의 꼭 방문하면 구룡포의 전설, 일본인 마을이 생긴 이유와 여러 가지 물품등 구룡포의 근대 역사를 을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구룡포 일보 가옥거리 여행

차를 주차를 하고 내리면 보이는 일본 가옥거리입니다. 주차장은 가옥거리 길 건너 맞은편 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넓은 주차장이지만 차량이 많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주차장 입구에 있어며 시내버스를 타고 방문하여도 불편합이 없이 일본 가옥거리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가옥거리 입구에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구룡포 일본 가옥거리 쓰여있는 기둥과 정면에 높은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을 올라가 구룡포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가 있습니다. 비가 오늘날의 일본 가옥거리는 운치는 있지만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구롱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디 보고 가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네요

 

 

계단입니다. 계단 옆으로 비석이 놓여 있습니다. 한 때 인기가 좋았던 드라마 중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계단입니다.  실제로는 일본일들이 구룡포항을 조성할 때 기여한 일본이민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좌우로 120개의 돌기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본은 패전 이후 주민들이 돌기둥에 시멘트를 발라 덮어버리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세워 놓았습니다. 이후 1960년 주민들이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할 충혼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두움을 준 후원자들의 이름을 다시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일본인 가옥거리는 이 돌계단이 시작하는 곳에서 좌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새로 지어진 집들도 있고 일본식 가옥으로 남아 있는 건물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인 가옥들은 카페나 기념품, 셀프 사진관 등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오면 구룡포의 상징인 9마리의 용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구룡포의 이름의 유래가 9마리 용이 승천한 곳이라고 하여 구룡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옆으로는 구룡포의 역사를 볼 수 있게 시대적 사진을 함께 전시해 놓았습니다. 구한 말부터 1975년까지 당시의 사진들과 구룡포의 아름다움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인 중 이곳 구룡포에 일본인들이 정착할 수 있게 만든 도가와 야스브로를 기리기 위해 당시 일본인들이 세운 송덕비라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송덕비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는 점입니다. 패망한 뒤 구룡포 주민들이 발랐다고 합니다. 

아픈 기억의 역사입니다.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이며 다시 발생되지 않아야 하는 사건의 역사입니다. 그렇기에 이 송덕비를 철거하지 않고 놓아두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도가와 야스브로 라는 사람은 일제 강점기 당시 구룡포에 방파제, 축조, 도로건설을 하여 일본인들이 구룡포의 정착을 도운 인물입니다. 하여 일본인들이 이 사람의 송덕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송덕비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충혼탑이 있습니다. 이 탑은 우리나라의 또 다른 아픔인 6. 25 전쟁 당시 포항지역 출신 전몰군경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0년에 만들어진 탑입니다. 당시 이 충혼탑을 만들 때 재정상황이 좋지 않아 탑신의 받침대를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설치한 구조물 위에 충혼탑을 세웠는데 2007년에 지금의 충혼탑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충혼탑 뒤로는 기와로 만들 건물이 있는데 왼쪽의 건물은  구룡포 어민들의 바다의 풍어와 안전조업을 기원하는 용왕당이고 하나는 충혼각입니다. 

충혼각에는 6.25 전쟁에 참전한 이 지역인 포항 출신 전몰군경등 235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사진 속 검은색 시멘트는 일본인들이 설치한 구조물의 흔적입니다. 

 

 

 

충혼탑 뒤쪽으로 이어진 길은 포항의 대표하는 음식인 과메기 문화관입니다.  이곳도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일본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다니던 학교 부지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을 위한 학교가 세워질 만큼 구룡포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를 했다고 합니다. 

힘이 없는 나라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우리의 자원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다시 조금 내려와 용과 송덕비가 있는 위치에서 바라본 구룡포 앞바다와 일본인 가옥거리 모습입니다. 하늘에 비 구름이 가득한 날이라 시원한 바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일본인 가옥거리의 모습을 운치 있게 만들어 주는 날이었습니다.

 

 

 

 

동백꽃 필 무렴의 드라마의 한 장면의 사진과 함께 이곳이 촬영지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함께 여행한 아들이 돌계단을 내려가도 있습니다.  사진에 보다 가파른 계단길입니다.  이곳을 만들 일본 사람들은 이곳에 없지만 당시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마을과 건물은 남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한 이곳이 다음 시대에도 이어져 다시는 풀이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계단을 내려와 일본인 가옥거리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모습들인지를 궁금하여 구경을 하였습니다. 옛 일본인 가옥 거리의 지도 있습니다. 당시 상당히 많은 일본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학교, 병원, 상점, 식당 등 만들어지면서 지역의 상관과 일자리가 많이 생겨 났다고 합니다.

 

 

 

초등 아들의 관심을 끌었던 추억의 상회입니다. 지금 아저씨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어릴 적 놀았던 추억이 남아 있는 가게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달고나 기계였습니다. 아들이 달고나를 만들고 있는 동안 구경을 하였는데 가게 안은 어릴 적 놀던 물건들이 많이 남아 있어 신기했고 이 물건들이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비 내리는 일본인 가옥거리 골목의 운치 있는 모습들입니다. 

거리에는 먹을거리와 셀프 사진과, 소품점, 예쁜 카페들이 있어 방문객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일본인 가옥거리에 가장 유명한 까멜리아라는 커피숍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잠시 휴식과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이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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