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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유래와 기원 이야기

무궁화 꽃의 유래와 기원과 무궁화 역사 및 무궁화 정보와 우리나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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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의 유래와 기원과 무궁화 역사 및 무궁화 정보와 우리나라 꽃.

우리나라는 예부터 근역 또는 무궁화 삼천리 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일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무궁화는 법령으로 표시하지 않았으나 예로부터 민족에게 사랑받아온 통념의 국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궁화는 일제강점기에 무궁화가 한국 민족의 상징적인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뽑아 불태워 없애버림으로 큰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기 않고 꽃을 피워내는 우리 민족의 꽃, 무궁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궁화 우리나라 꽃.

무궁화의 원산지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입니다. 다른 견해로 학명에 syriacus 가 붙여 있고 시리아가 원산지라는 경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이전의 시대부터 무궁화는 환화로 우리 민족의 시작과 그역 사를 함께한 꽃이고 또한 오래전부터 삼천리 강산에 얼리 재생했던 꽃이었습니다. 이른 이유로 우리나라도 원산지로 보기도 합니다. 무궁화 품종은 세계적으로 350여 종이며 우리나라는 250여 종이 있고 동아 군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우리나라 대표 품종은 배달계, 청단심계, 백단심계, 아사달계, 홍단심계 등이 있습니다.

무궁화 역사.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진의 문인 곽복 (276~324)이 쓴 지리서 <산해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대기><단군 세게(5대 단군 군 구을이 무궁화를 심은 기록이 있습니다>또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4세기 우리나라에는 가는 곳마다 무궁화가 만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 근화향(무궁화의 나라)이라 하였고 , 구당서 , 양화소록 등 고 문헌에서도 우리나라를 근역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무궁화 이름 유래.

중국은 무궁화를 목근, 순영, 순화, 훈화초, 조개 모 낙화, 화 노옥중 등으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무궁화로는 쓰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궁화 여러 한자로 쓰였는데 최근에는 무궁화(無窮花)로만 쓰고 있습니다. 예부터 쓰여 오던 무궁화라는 한글명칭은 훈민정음 창제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한자로는 목근화로 표기하 표기하였습니다. 무궁화의 형태 변화는 목근화-> 무긴 화-> 무깅화-> 무궁화 의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또한 1923년에 전남 완도군 소안면 비자리에서는 노인들이 무궁화를 무우게로 부른다는 기록이 있으며 무우게에서 무궁화로 변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아 무궁화는 오랜 전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다른 이름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궁화를 무 쿠게, 하치스, 기하스 등으로 쑤고 있는데 무쿠게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무궁화가 도입될 때에 전해진 이름입니다.
무궁화의 속명은 Hibiscus는 이집트의 히비스(Hibis) 신을 닮았다는 뜻으로, 히비스신처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속명 Althaea라고 쓰였는데 그리스어로 치료하다 라는 뜻이 있으며, 영명으로 Rose of Sharon이라고 하는 것은 가나안 땅 중에서 제일 좋은 곳 샤롱이 피는 장비라고 하여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크게 찬미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무궁화에 관련 상식 정보.

무궁화는 자가 불화 합성 식물입니다. 오랫동안 수많은 잡종이 생겼을 것이고 또 변이에 의한 품종들도 적이 않았을 것이나 오늘날 재래종으로서 볼만한 것이 드뭅니다. 일제강점기에 무궁화가 우리나라 민족의 상징인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뽑아 불태워 없애버림으로써 큰 수난을 겪었어 재래종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애국지사 남궁 억 선생님은 무궁화 묘목을 전국적으로 보급해 오다가 형무소에 투옥되었거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도안도 삭제되었습니다. 옛날 혼례 때 입은 활옷에 무궁화를 수놓는 것은 무궁화의 다산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무궁화의 잘못 알려진 상식이 있는데 이 사실들은 일제가 무궁화를 말살하기 위해 퍼드린 거짓 선전이었습니다.

  • 하루살이 꼿, 눈병 나는 꽃, 부스럼 꽃
  • 무궁화는 진딧물 꽃, 관상 가치가 떨어지는 꽃
  • 꽃이 아름답지 않아 국화의 자격이 없는 꽃

이런 것들은 사실리 아니고 일제가 무궁화를 폄훼하기 위해 만든 거짓 이야기입니다. 무궁화의 꽃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꽃은 맞지만 이것을 무려 100일 동안이나 피었다가 지는 꽃나무입니다. 나무로 보면 가장 오랫동안 피는 꽃입니다. 무궁화는 요염하거나 짙은 향기를 가진 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깨끗한 흰 꽃잎과 깊숙이 자리 잡은 붉은색 무늬는 가슴속에 열정을 간직한 순결한 영혼을 연상케 합니다. 무궁화의 수액은 진딧물을 좋아하는 수액입니다. 나무가 상처가 생기거나 가지치기를 하는 곳에 진딧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자연 그대로 자란 무궁화는 진딧물이 끼지 않습니다. 또한 무궁화는 영양분이 많아 한약재료 쓰이며 영양분이 많은 꽃은 병충해가 많이 꼬이기 마련입니다. 간혹 진딧물이 생기더라도 무궁화는 자정작용을 통해 스스로 지켜내는 꽃입니다.1년에 1~2회 만 방역을 해도 벌레는 끼지 않습니다.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우리나라 국화로 사용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구한말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 풍류 한국 에 보면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은 그 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꽃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정해졌으나, 우리나라의 무궁화만은 유일하게 황실의 이화(오얏꽃, 자두꽃)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으며,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한제국은 한때 자두꽃(오얏꽃)을 황실을 대표하는 꽃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내용이 담길 만큼 은연중 무궁화를 우리나라 대표하는 꽃으로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민간단체에서 2007년 8월 8일을 무궁화의 날로 정했습니다. 2015년까지만 해도 무궁화 꽃 축제는 홍천 한 곳이었지만 지금음 세종시, 완주 지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일제의 무궁화동산 사건.

강원도 홍천 보리울의 무궁화동산 사건이 있는데, 지금의 무궁화공원이 들어선 이곳은 한서 남궁억 선생님은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남궁억 선생님은 개화파의 한 사람으로 정치보다도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애국지사였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서울을 떠나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모곡리 마을로 내려와 그의 나이 60세에 초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남궁억 선생님은 무궁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것이 나라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학교 뒤뜰에 7만 그루의 무궁화 묘목을 길러서 몰래 나누어주기 시 잘하였고, 무궁화 노래를 지어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그러던 중 1933년 11월 2일 홍천경찰서 사법 주임인 신현규가 조사원을 가장하여 남궁억 선생님을 방문했는데, 남궁억 선생님은 신현규를 무궁화 묘포로 데리고 가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라는 것을 설명하며 "사쿠라는 활짝 피었다가 곧 지지만 무궁화는 면연이 피어나는 것처럼 한국의 역사가 영원할 것" 이리고 역설하였고 이 일로 남궁억 선생님은 체포되었으며 보리울 학교도 폐쇄되고 무궁화동산은 불살라진 사건이 무궁화동산 사건입니다.

무궁화 국화로 제정.

1945년 광복 이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 국기봉을 무궁화로 사용하고, 정부와 국회의 표장도 무궁화 도안을 사용하면서 나라꽃 무궁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훈장이 무궁화대훈장인 것을 비롯해, 통신위성에도 무궁화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 삼부의 효상으로 국회의원, 법관, 경찰 등 무궁화를 표상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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