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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도움 이야기

설날 전통 민속놀이 유래와 의미 및 민속놀이 역사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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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하면 떠오르는 민속놀이는 바로 윷놀이입니다. 저가 자랐던 시골 마을에서는 설날 오후에 동네에서 마을 회관에 모여 상품을 걸고 윷놀이를 하며 우승자를 가리는 시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통 민솔놀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과 애환이 녹아져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윷놀이는 한 해 농사를 점치기도 하고 연날리기는 나쁜 기운을 액땜 하는 방안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부녀자들은 널뛰기를 하면서 담너머의 세상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명절인 설에 하는 민속놀이 소개와 민속놀이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의미를 정리하였습니다.

 

글 목차

1. 윷놀이 유래와 의미

2. 제기차기 유래와 의미

3. 연날리기 유래와 의미

4. 널뛰기의 유래와 의미

5. 팽이치기 유래와 의미

6. 승경도 놀이 유래와 의미

7. 돈치기의 유래와 의미

 

윷놀이 유래와 의미

윷놀이는 한자로는 사희, 척사라고 합니다. 2인이 대국하여 각각 4말을 가지고 29 밭이 있는 윷판을 쓰는데, 말 길은 원근과 지속의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입니다. 인원수가 많을 때에는 두 패 또는 세 패로 편을 나누어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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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대표 민속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유서 깊고 전통 있는 놀이입니다. 

놀이 방법은 간단하며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놀이로 도, 개, 걸, 윷, 모 중 넷을 뜻하는 윷과 놀이가 복합된 것이라 추측합니다. 윷의 한자어 사도 나무 막대기 넷을 가지고 논다는 뜻입니다.

 

윷놀이는 본래 한 해의 농사 점을 보는 것으로 세초(설날)에 농민들이 윷놀이로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던 고대 농경시대의 유풍의 하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그 본래의 뜻이 차츰 없어지고, 오늘날에 와서는 단순히 오락적인 놀이가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윷가락의 호칭은 하나를 도, 둘을 개, 셋을 걸, 넷을 윷, 다섯을 모라 부르는데, 이는 끗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뜻하는데 가축의 이름을 딴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가축들은 옛 농경사회에 있어서는 큰 재산이었고 또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가장 친밀한 짐승입니다. 그러므로 가축의 이름과 함께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도 윷놀이에 이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는 원말이 '돝'으로서 어간 일부의 탈락형입니다. 돈은 돼지의 고어(옛말)로 아지고 종돈을 '씨돝'이라 부르고,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 중 돼지고기를 돝고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개는 지금도 개입니다.  걸은 일부에서는 코끼리 또는 신마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라 합니다. 걸은 양을 말하며 옛날에는 양을 '걸'이라 하였습니다. 수놈의 양을 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윷은 소이니 방언에 슈, 슛, 슝 쇼, 소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슛이 또 슛으로 변하였는데, 이것이 철자법 때문에 윷으로 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는 말입니다. 방언에 말을 몰, 모, 메라 함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모는 몰의 어간 일부 탈락형입니다.

 

윷의 역사는 부여설, 고려설, 신라설(삼국시대)이 있습니다. 우리나의 문헌에는 윷놀이는 고려 유속으로 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의 문헌에 백제에서 윷놀이와 비슷한 놀이가 있었고 신라에서 윷놀이가 행여 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 삼국시대 때부터 윷놀이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여 때부터 있었다는 견해도 있는데 이것은 부여의 관직제를 모의한 것 같이도 보이는 것에서 나온 견해일 뿐 그 이상의 다른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민속놀이6

 

윷판은 종이나 나무 위에 원형 또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천 원 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을 뜻하며 하늘과 땅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윷판 원형의 20 밭(말이 머무는 자리)과 중앙을 정점으로 열십자(╂) 자형의 9 밭 합해 모두 29 밭을 그려 만듭니다. 윷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16세기 문헌에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안이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니 윷판은 하늘이 땅을 둘러싼 모습이라, 또 가운데 있는 것은 북극성이요, 옆으로 벌어져 있는 것은 28 수이나 윷판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28수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윷의 종류에도 장작윷과 밤윷이 있고 놀이 방법도 다양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윷놀이는 재미로도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윷판은 농토이고 윷말은 놀이꾼이 윷을 던져 나온 윷 패에 따라 움직이는 계절의 변화를 상징해 풍년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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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차기 유래와 의미

제기를 가지고 발로 차는 놀이입니다. 제기는 엽전이나 쇠붙이에 얇고 질긴 종이나 천을 접어서 싼 다음, 끝을 여러 갈래고 찢어 너풀거리게 한 놀이기구입니다. 정초에 걸쳐 노는 어린이 놀이입니다. 요즘은 안에 금속 원판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케이스에 비닐끈이 달여 있습니다. 제기는 지방에 따라 다르게 불리기도 하는데 평안도는 테기, 체기 전라도는 재기 제주도는 쪽기 등으로 불립니다. 

중국에도 제기가 있는데 우리의 제기와 비슷한데 종이나 천으로 널 풀 거리는 것이 아니라 깃털이 달려있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제기의 기원은 고대 중국의 운동인 축국에서 제기차기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기 또는 제기차기라는 말도 축국을 우리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공을 차는 축국을 조선 초기에는 '뎌기'라고 했다가 18세기 이후 '져기, 젹이를 거쳐 제기로 바뀌습니다. 초기에는 공을 제기로 사용하였다가 공 이 외에 새로이 건, 건자, 척 건자 같은 제기가 사용하였습니다. 척 건자는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제기였습니다. 옛날 공을 쉽게 구하거나 만들 수 없던 상황에서 아이들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제기가 등장하였습니다. 우니라는 제기차기 방식이 주로 성행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실제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 모두 축국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축국은 고려 때에는 돼지 방광을 만든 기구라고 불리는 공기 공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때까지 비교적 다양한 계층의 놀이였던 축국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변화를 맞는데, 조선대에 성리학 이념의 확산으로 인해 놀이가 곧 잡희 로 인식되면서 축국은 아이들의 놀이로 굳어졌습니다.

 

제기차기는 대표적으로 셈 제기, 사방 제기, 종로 제게 등이 있습니다.

  • 셈 제기: 보통 제기차기로 알려져 있는 방식입니다. 셈 제기는 한번 발로 차기 시작하여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얼마나 연속으로 많이 발로 차는가를 겨루는 것입니다.
  • 사방 제기: 네 명의 사람이 모여 대형을 잡고 제기를 발로 주고받으며 차는 방식입니다. 제기를 잘못 차서 다음 사람에서 전달하지 못한 사람이 패배하는 것입니다.
  • 종로제기: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본 다음 제기를 서로 번갈아가며 차는 놀이입니다. 과거 종로 상인들이 겨울에 추위를 잊고자 상가 길거리에서 유행했던 데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 양발 차기:셈 차기랑 비슷한데 왼발, 오르발을 바꿔가면서 한 번씩 번갈아 차면서 많이 차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입니다.
 
민속놀이4

널뛰기 유래와 의미

널뛰기는 정초에 여자들이 둘로 나뉘어 긴 널빤지의 중간에 둥근 짚단을 받치고 양쪽에서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발로 굴러서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는 놀이로 답판, 도판, 초판희 판무라고도 합니다.

 

널뛰기 언제 누가 처음으로 시작하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매우 오래전부터 새해를 맞은 여인들 하는 놀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정조 시대 경도잡지라는 문헌에 '여염집 부녀자들이 몇 자 높이로 오라 가며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기도 하는데, 이를 초판희 라 한다'라고 기록이되 있습니다. 주황의 유구국기략에는 유구의 부녀자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추는 것을 판무라 하고 이것이 조선 초에 유구인들이(일본 오키나와) 조선에서 배워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니다. 이를 볼 때 이미 고려시대에 널뛰기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널뛰기의 유래로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옛날 죄를 지은 두 남자가 옥 속에 갇혔고 남편을 볼 수 없었던 부인이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어 다른 죄인의 아내와 공모하여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 옥에 갇혀있는 남편들의 얼굴을 엿봤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옛날 집안에 서만 지내던 부녀자들이 집 밖 세상을 보고 싶어서 널뛰리를 하여,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을 때 담장 밖의 세상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보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널을 뛰면 시집가서 아기를 잘 낳는다는 이유와 반대로 처녀 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속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 년 중 발에 가시나 못이 찔리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였답니다.

 

다섯 번째, 널을 뛰면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하여 널을 뛰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음력 1월 16일 귀신의 날에도 널을 뛰었는데 이것은 널을 뛰어 귀신의 대가리(머리) 깬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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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유래와 의미

우리나라의 연날리기는 원래 군사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연을 날릴 때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날렸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연날리기를 오락으로 삼게 되고, 그것이 민속과 결합되면서 연을 날리는 시기가 고정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날기가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삼국사기입니다. 신라의 선덕 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즉위하자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유신 장군이 이 반란군을 잠재우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입니다. 또 고려 때의 문헌에도 음력 7월에 접어들면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때는 이미 보편적으로 연날리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연은 대개 음력 12월 섣달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연날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초 세배와 성묘가 끝나면 본격 적으로 마을 앞이나 갯벌에서 띄우는데 정월 대보름 수일 전에 가장 많은 연을 날립니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면 달맞이를 하고 난 후에 각자 띄우던 연을 가지고 나와 액막이연을 날리는 풍속이 있습니다. 연에다 '액' 자 쓰거나 송액, 송액 영복이라 글을 쓴 후 자기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습니다. 액막이연을 정월 대보름에 날려 보내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여러 종류의 액막이 풍속이 대개 정월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을 날리는 시기가 따로 있는데 조선 후기의 문헌에 음력 12월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고 정월 대보름까지 연을 날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에는 연을 날리다가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 액막이를 하면서 연날리기를 마감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 이후에 연을 날리면 액운이 돌아온다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또 연날기는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하는 놀이로 다른 연과 어울려서 다른 연을 끊어먹기를 하기도 합니다. 다른 연을 끊어먹도록 하는 것을 "깸치 먹인다" 고 하는데 연 끊어먹기는 대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연의 종류는 연의 형태와 문양에 따라 분류되며 그 종류가 100여 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사각 장방형의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 있는 방패연과 어린이들이 날리는 긴 꼬리가 달린 가오리연, 그리고 사람, 동물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제작자의 창의성에 따라 만드는 창작연이 있습니다.

 

특히 방패연의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것으로 연의 가운데에 방구멍을 내어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 공간을 즉시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빠지게 되어 있어 강한 바람에도 연이 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연을 조정 하기가 매우 빠르고 많은 연날리기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민속놀이6

 

팽이치기 유래와 의미

팽이치기는 겨울철 얼음판 위에서 아이들이 팽이를 돌리며 노는 놀이입니다. 조선 숙종 때 편찬된 문헌에 팽이를 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핑이라는 말은 팽이가 빙빙 돈다 또는 핑핑 돈다는 뜻에서 파생된 말로 볼 수 있습니다. 팽이는 17세 시 말까지 팽이가 아닌 핑이로 불렸습니다. 팽이는 평안도에서는 세리, 세루, 함경도에서는 봉애, 방애, 경상도에서는 뺑이, 핑딩, 전라도에서는 뺑돌이, 제주도에서는 도래기 불렸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게 불렸지만 지금은 팽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팽이치기는 도토리나 상수리 따위를 돌리며 장난한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팽이치기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습니다. 팽이치기는 중국의 당나라 때 성행하던 것이 신라를 걸쳐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 문헌인 일본서기에 신라에서 팽이가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는 성덕왕 때에 이미 팽이치기가 행해졌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민속 팽이의 종류는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원추형으로 아랫부분을 점차 뾰족하게 만든 말팽이가 가장 보편적인 팽이입니다. 그밖에도 위아래 양쪽을 뾰족하게 깎아서 양쪽 모두 돌릴 수 있도록 만든 장구팽이, 상수리나무 열매로 만든 상수리 팽이가 있습니다. 팽이는 주로 소나무의 관솔이나 박달나무, 향나무, 팽나무와 같이 무겁고 단단한 나무를 깎아 만듭니다.

 

승경도놀이의 유래

지금은 생소한 놀이로 주로 양반들의 자녀들이 하던 놀이로 옛 벼슬 이름을 종이에 도표로 그려 놓고 윤목이나 주사위를 던져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오르는 가를 겨루는 민속놀이입니다.

 

승경도놀이는 벼슬살이하는 도표라는 뜻으로 종경도, 종정도, 승정도, 승관도라고 부립니다. 승경도놀이는 오각형으로 길쭉하게 만든 윤목이나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대로 말을 이동하여 놀이판의 최종 종착지인 봉조하에 도착하면 승리하는데 주로 양반의 자녀들이 즐기던 민속놀이입니다. 놀이의 기지는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이 놀이를 통해 일 년의 운세를 점치기도 했기 때문에 주로 정월에 즐겨하였습니다. 

 

승경도놀이는 조선의 관직 체계를 반영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로 보아 승경도놀이는 조선 초기 관료제의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기존의 말판놀이를 응용해서 만든 판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승경도놀이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높은 벼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을 놀이를 통해서 대리 충족시킬 목적으로 양반 자제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돈치기 놀이

돈치기 놀이는 일명  세뱃돈 따먹기 놀이입니다. 일정한 거리에 구멍을 차 놓고 엽전이나 동전을 던져 그 속에 들어간 것을 따기도 하고 또 구멍밖에 있는 것을 돌로 맞혀 차지하는 놀이입니다. 옛날 세뱃돈으로 받은 엽전을 이용하여 서로 따먹는 놀이로 아이들이 하던 놀이였습니다.

 

옛날 아이들에게 돈은 지금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설날 세뱃돈을 제외하고 돈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이도 돈은 항상 부족하였고 아이들이 돈을 더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돈치기 놀이였습니다. 돈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했지만 돈을 딸 수도 있는 놀이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199개의 지역에서 행해졌다고 조선 향토 오락이라는 문헌에 기록 대어 있습니다. 대부분 같은 이웃 지방에서 놀이 방법이 비슷하지만 지역마다 놀이 방법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였답니다. 

 

아이들이 하기에는 사행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광복 후 학교에서 돈치기를 금지시켰습니다. 이후 아이들이 구슬치기 등이 일반화되었고 아이들이 돈을 가지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여담이지만 현재 40~ 50대 사이 중, 고등학교를 다닌 분들은 학교에서 짤짤이와 동전 치기를 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돈치기 역시 옛날 이것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놀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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