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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유래와 기원 역사 이야기

막걸리의 유래와 기원 및 막걸리의 역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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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유래와 막걸리의 기원 및 막걸리의 역사 정보, 막걸리 이야기

막걸리는 우리나라의 전통주입니다. 도수가 높은 편이 아니라 농부들이 농사일을 할 때 새참으로 갈증을 해소할 때 먹었던 농민들의 술이었습니다. 막걸리에는 오덕이 있다고 하는데 허기를 다스려주는 덕, 취기사 심하지 않은 덕, 추위를 덜어주는 덕, 일하기 좋게 기운을 돋궈주는 덕, 의사소통을 원활케 하는 덕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들어주었던 우리의 전통주 막걸리의 유래, 막걸리 기원 , 막걸리의 역사 정보를 정리하였습니다.

 

내용 설명

  • 막걸리의 이름 유래.
  • 막걸리의  기원과 역사.
  • 막걸리가 되려면.
  • 막걸리의 시대적 변화.

막걸리1

막걸리의 이름 유래.

막걸리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고유한 우리니라 술의 하나로서 어원은 술을 빚을 때 위에 뜬 맑은술만 건저 내지 않고 "막 거른" 술이라는데 서 유래했습니다

막걸리의 기원과 역사.

우리니라에서 막걸리를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곡류를 이용한, 막걸리와 비슷한 곡주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시작됩니다. 고려 때에는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때에 만든다고 하여 이화주라고도 하였고 맑지 않고 탁하다고 해서 막걸리를 탁주라고도 불렸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많이 먹는 술로 식량 대용 또는 갈증 해소 음료로서 농부들이 애용해 왔으므로 농주라고도 불렸습니다.
막걸리는 삼국사기에 미온 주로 소개한 기록이 있고 , 고려 때의 고려도경 에는 "왕이나 귀족들은 맵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별 문중별로 다양하게 발전시킨 독특한 막걸리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막걸리가 되려면.

막걸리는 쌀이나 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데, 술이 완성되면 체에 내려 목으로 넘기기에 거북한 거친 것들만 걸러냅니다. 그렇다 보니 곡물로 만들 수 있는 술 중에 가장 원초적인 단계의 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하여 6~13% 로 알코올 도수도 낮은 편이며, 단백질 , 유산균 등이 풍부하면서도 열량은 낮은 것이 특징입니다. 막걸리는 물 다음으로 많은 것은 10% 내외를 차지하는 식이섬유입니다.

술을 제조할때 곡물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키게 되는데, 발효가 될 수록 밥풀은 가라앉습니다. 술독에 가장 위에있는 맑은 부분을 걸러서 여과한게 청주이며, 술에 쌀알이 식혜처럼 동동 뜨는데 그 윗부분을 펴내서 담은것이 동동주이며 가락 않은 부분과 동동주를 섞어서 막 걸러내서 짜내서 먹는 술이 막걸리 입니다 

막걸리2

막걸리의 시대적 변화.

고려시대 국가의 큰 행사를 위해 사찰 등에서 대량으로 빚었던 술이 조선시대로 넘어 오면서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이 시행되었고, 양반 종가의 가양주를 기반으로 양조기술이 더욱 고급화되어 다양한 술의 종류와 양조기법들이 생겨났습니다. 일일 주, 계명주, 삼일주, 반야 주, 등 7일 이내에 빠르게 빚어지는 술들이 있었으며 이러한 술들은 맑은술(청주)로 마시기 위해 제조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탄산이 있는 청량한 막걸리로 먹기 위해 빚은 것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반 가정에서 손님 대접 혹은 제례를 를 위해 술을 빚어오다가 조선총독부의 문화 말살정책으로 1909년 주세법, 1916년 주세령, 1934년 자가용 양조면허 폐지로 인하여 우리나라 술의 맥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일부 가정에서의 전통주는 말주로 취급을 받으며 점차 대형화로 옮겨졌습니다. 해방 후 서민들의 술로 늘 사랑을 받아왔던 말거리는 6.25 전쟁으로 인한 식량부족과 1965년 실시한 양곡관리법에 따른 순곡주 제조 금지령으로 쌀 대신 외국에서 수입한 밀가루, 옥수수, 보리 등으로 대체되어 막걸리의 주원료가 바뀌면서 쌀 막걸리보다 단맛이 덜하고 신맛이 강하여 술의 질이 떨어지고 막걸리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소비량도 줄기 시작하였습니다.

막걸리3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막걸리는 1970년대 까지 우리의 주류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는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술 제조업자들이 생산원가도 줄이고 발효기간을 앞단 기기 위해 공업용 화학물질인 카바이드를 넣어 막걸리를 만들었고 카바이드가 들어간 막걸리는 불순물도 많았고 맛고 균일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다음날 숙취와 두통이 뒤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카바이드 때문에 막걸리는 한때 마시면 뒤끝이 좋지 않은 술리아는 오명을 사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과 더불어 쌀의 생산량이 늘면서 1991년에 다시 쌀 막걸리가 나오게 되었는데, 일부 사람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사카린, 아스파탐 등과 간은 인공 감미료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업체에서 국내산 원료가 아닌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막걸리보다는 독한 소조와 시원한 맥주를 애용하였고 막걸리의 인기는 예전만 못했습니다. 2000년 후반부터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는데 일본일들의 막걸리를 즐겨 마시다는 보도가 있으면서 우리나라에도 막걸리가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막걸리는 여느 술과 다르게 곡물로만 만드는 술이기 때문에 웰빙 식품, 건강한 먹거리 등 웰빙 식품이라는 인식이 생겨나 현재에도 대중들이 꾸준히 찾는 술이 되었습니다.

막걸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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