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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유래와 기원 역사 이야기

짜장면의 유래와 역사 및 짜장면의 기원 및 짜장면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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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은 한때 우리나라 외식 음식의 대표하는 메뉴였습니다. 지금은 일식, 중식, 양식 등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 까지는 중국집의 짜장면의 인기를 넘어서는 외식 메뉴는 없었습니다. 1970~80년 때에는 졸업식, 입학식 등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었던 음식이 바로 짜장면으로,  현재 중년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분들의 기억 속에 짜장면은 아련한 추억속 행복과 즐거움을  떠올려주는 음식입니다. 나 또한 중학교 졸업식날 친구의 어머님이 사 주신 짜장면을 친구화 합께 먹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인기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맵지안고 달면서 고소한 맛은 아이들의 싫어할 수 없는 맛입니다.  짜장면은 한국땅에 태어난 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인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짜장면의 기원은 중국이지만 짜장면의 탄생은 한국이며, 중국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짜장면, 한국인들을 위해 탄생한 중국음식인 짜장면, 이제는 한국음식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국민 음식인 짜장면의 역사와 유래와 기원, 종류 그리고 어떻게 짜장면이 한국인들의 국민음식이 되었는지 등 짜장면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글 목차

1. 짜장면의 기원이 된 작장면

2. 짜장면의 유래와 역사 

3. 짜장면 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공화춘 식당

4. 짜장면의 대중화와 짜장면의 탄생 배경

5. 짜장면의 종류

6. 짜장면과 자장면 누가 표준어??

7. 철가방의 유래

 

짜장3

 

짜장면 기원이 된 작장면 

짜장면은 중국어로 자지앙미엔이라고 합니다. 장을 볶아 면과 함께 먹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짜장면 보다 기름기가 적어 젓가락으로 적당히 슥슥 썩어 먹습니다.  중국 된장을 볶아 면 위에 얹어 먹는 면요리를 통칭하는 음식입니다. 중국의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장도 다양하고 고명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름 앞에 지역명을 붙여서 구분합니다. 우리나라의 짜장면은 산둥반도의 작장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음식입니다. 중국에서는 북경식 작장면이 원조이고 유명합니다.  

 

작장면의 우리의 짜장면보다 단 맛과 물기가 적고 짠맛이 강하다고 하며 약간 비빔국수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장명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울진의 해주 작장면 식당이 있어며 안산 원곡동 등 국내 중국인 밀집지역의 중국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작장면은 우리의 짜장면처럼 중국 본토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중국 내에서 작장면을 먹는 지역으로 베이징, 허베이성, 산둥성 등의 중국의 북방 지역의 음식입니다.

 

작장명의 유래

작장면의 유래설은 진시황이 국수 요리사를 불러다가 요리를 시켰는데 요리사가 실수로 장을 볶아버렸고  실수가 두려웠던 요리가사 꾀를 내어 새로 만든 면 요리로 소개하여 목숨을 건졌다는 설입니다. 다른 설로는 중국의 명나라 말 이자성의 난 때 반란군 측에서 편의성을 높인 전투식량을 개발하다가 국물 없는 국수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작장명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짜장면의 기원 요약

- 짜장면의 기원은 중국의 작장면이며 우리나라의 짜장면과는 맛고 모양이 다릅니다.

 

짜장2

 

짜장면의 유래와 역사 

짜장면은 중국인이 우리나라에 이주하면서 가지고 온 음식입니다. 중국인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이주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때부터입니다. 조선말 조정의 부패와 군납비리로 군일들의 급료가 제때 나오지 않자 군인들의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은 청나라에 도움 받아 반란을 진압하였고 그 후 인천에 청국조계가 설정되면서부터입니다. 부산, 원산에 이어 인천의 제물포항은 조선의 3번째 개항한 곳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강화도 조약 후 조선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1884년 인천에 청국조계가 설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인들(화교) 이 이주하여 이 지역에 정착하였습니다. 1890년대쯤 중국 산둥 지방에서 건너온 부두 근로자들인 큐리( 하역 인부)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첨면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인 작장면이 짜장면의 시초였습니다. 

 

당시 화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곳은 현재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면 인천과 가까운 거리인 중국의 산둥 지방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산둥지방의 가정식인 작장면은 간단히 만들 수 있어서 부두 한편에 솥 만 있으면 노점 장사를 할 수 있었던 음식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면도 수타면이 아닌 칼국수면과 비슷한 면을 사용하였습니다.

 

화교들의 공동체인 차이나타운이 자리를 잡아 감에 따라  정식 청나라 음식 식당도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길거리 음식으로 노동자들의 한 끼 식사였던 짜장면을 정식 청요리집에서 판매를 시작하였고  일부 식당은 중국은 본토의 수타 요리사를 불러와 수타면 짜장을 판매하는 곳도 생겨 났습니다. 1900년대 이전에 이미 인천 개항장 일 때 차이나타운에 많은 식당이 생겨 났고 여러 식당에서 짜장면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짜장면의 유래한 줄 요약

- 1890년대 인천항 개항 후 중국 무역 관련 업자들과 중국 산둥지방의 노동자들이 오면서 산둥지방의 작장면이 짜장면의 시초였습니다.

- 차이나 타운이 자리를 잡으면서 화교들이 많아졌고  1900년대부터 많은  정식 식당에서 작장면을 판매하였습니다.

 

짜장1

 

짜장면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공화춘 식당

공화춘이라는 이름은 중국 공화국의 봄이라는 뜻입니다. 짜장면의 원조집으로 알려진 공화춘은 차이나타운의 짜장면을 파는 여러 식당 중 한 곳이었으면 1908년에 문을 열었던 식당이었습니다. 당시 공화춘 식당이 유명해지면서 짜장면의 원조로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공화춘은 초기 중국인 무역업자들을 주 고객으로 삼아 장사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선 뒤에는 토착화된 중화요리가 조선인들에게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나라 시대 건축양식의 2층 식당으로 결혼식등 대규모 연회도 소화할 수 있는 연회장까지 갖춰 당시 고급 음식점으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공화춘은 한국에서 짜장면을 처음 만들어 판매한 최초의 식당이 아닙니다. 공화춘은 작장면이 우리나라 맞게 한국화 된 음식을 짜장면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사용하여 판매한 식당이었습니다.

 

공화춘은 1908년부터 1983년까지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에서 약 75년을 영업 한 2층 건물의 중국음식점입니다. 공화춘은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 246호로 지정되어 짜장면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공화춘은 청나라 시대의 건축물로 특이한 모양의 건축물입니다.

 

한줄 요약

- 공화춘은 짜장면을 처음 만들어 판매한 식당은 아님. 짜장면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식당이라고 함.

 

짜장면5

 

짜장면의 대중화와 짜장면의 탄생 배경

공화춘 식당이 유명한 음식점이었지만 중국 무역업자들과 화교들을 주로 상대로 하는 식당이어서 일제 강점기에 짜장면은 그렇게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짜장면이 한국인의 대중음식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시기는 광복 이후부터였습니다.

 

해방 직후 화교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남북분단과 중국의 공산화 등 당시 정치상황과 한국 정부의 중국인 무역 금지 정책에 놓인 화교는 우리나라를 떠나야 했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땅을 떠나는 화교는 더 늘어났고 이후 한국정부가 화교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두면서 화교 인구는 정체되었습니다. 화교는 재산권 행사의 제약으로 큰 사업을 할 수가 없었고 작은 식당을 열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 만들어 판매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의 무상원조로 지원된 밀가루를 이용한  면류 음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었습니다.

 

 1960대 중반 정부의 강한 정책으로 중국으로부터 기본적인 재료 수입이 어려워지자 화교들은 한국산의 재료를 활용한 한국식 중화요리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한국식 춘장을 사용하면서부터 검은색 짜장면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짜장면은 갈색 춘장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갈색 짜장면이었다고 합니다. 검은색 춘장은 1948년 영화장유 라는 식품회사를 차린 산동 출신 화교 왕송산이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을 위해 중국춘장에 캐러멜 색소와 감미료,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여 만든 춘장이었습니다.

 

처음 개발된 춘장은 중국식에 가까운 춘장이었지만 1960년대 중반 한국인의 입 맛에 맞는 한국식 춘장을 개발하여 사자표 춘장을 출시하였습니다. 중국식 된장은 원래 적갈색을 이며 발효가 오래될수록 검 붉은색을 띠며 짠맛이 강하고 반면 한국식 춘장은 달고 고소하며 캐러멜 색소 첨가로 인해 완전 검은색을 띱니다. 한국식 춘장의 개발은 짜장면 대중화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짜장면3

 

1960년대부터 양파의 대량 재배와 한국식 춘장의 시판 그리고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 등이 사회적 상황이 맞물려 짜장면이 급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차이나 타운 주변의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던 짜장면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에 저렴한 가격과 간편함과 한국인의 성미에 맞는 빠른 조리법 등 한국인들에 맞게 변화된 짜장면은 엄청난 붐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천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짜장면이 한국인에게 인기를 끌면서 한국인들이 주인인 식당들이 전국에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짜장면의 대중화를 이끈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배달입니다. 우리나에서 중국요리의 배달 기록은 1930년대부터였다고 합니다. 중국요리는 한식과 다르게 국물이 없어 배달이 쉬웠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들어 전화기가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음식 배달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1970년대 포장도로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골목골목 깔리고 1980년대 들어 오토바이가 대중화 대면서 배달 서비스가 일반화되고 배달가능 범위도 넓어져 우니라라에서 짜장면이 배달 안 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짜장면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4월 14일은 블랙 데이라 하여 연인이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날로 검은색인 짜장면을 먹기도 합니다.  

 

짜장면은 한국에서 토착화된 중국음식으로 짜장면을 파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루 약 200만 그릇이 팔리다고 하며 짜장면은 외래음식으로 유일하게 한국의 100대 문화 상징에 들어가며 정부의 중점물가 관리 품목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짜장면의 대중화 요약

- 해방 후 중국과의 여러 문제로 인해 화교들이 떠났고 또한 한국정부의 정책 등 화교들의 경제 제약으로 작을 식당을 차리는 화교가 늘어났음.

- 화교들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짜장면을 개발하여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시작함.

- 폭발적인 짜장면의 인기로 인해 한국 사람들도 짜장면 식당을 차리면서 전국적으로 짜장면이 퍼져나감.

- 19060대 전화 보급, 1970년대 도로포장, 1980대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 등으로 짜장면 전성기를 맞음. 

 

짜장면2

 

짜장면의 종류

짜장면도 여러 종류로 구분이 됩니다. 춘장은 기본으로 사용하지만 다른 재료에 따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이름도 다양합니다. 우리나라의 짜장면의 종류를 소개하겠습니다.

 

1. 일반(옛날) 짜장: 육수, 전분, 양파, 돼지고기, 춘장 등 기본 재료를 큼직하게 썰어 듬뿍 넣고 흥건하게 국물을 부은 짜장면

2. 간 짜장: 육수를 넣지 않고 재료와 짜장만을 볶아 면 위에 따로 부어 먹는 짜장면

3. 삼선 짜장: 보통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 전복, 죽순, 표고버섯, 해삼 중 세 가지를 넣은 짜장면

4. 사천짜장: 중국 사천 지방식 자장면으로 고추기름이 더해져서 매운맛이 강합니다.

5. 유니짜장:돼지고기, 감자, 양파, 등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잘게 다져서 만든 짜장면

6. 유슬짜장: 돼지고기를 길쭉하게 채로 썰어 넣고 조리한 짜장면

7. 쟁반짜장:면과 일반짜장 소스를 볶음 다음 쟁반에 담겨 나오는 짜장면

8. 고추짜장:고추와 청양기름을 넣은 짜장면으로 매운맛이 강한 짜장면

9. 백짜장면:춘장을 사용하지 않고 볶은 고기와 다진 양파와 마늘을 면과 같이 섞어 비벼 먹는 짜장 인천 차이나타운의 명물인 짜장면

 

자장면과 짜장면 중 누가 표준어??

자장면과 짜장면은 어느 쪽이 표준어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자장면과 짜장면은 모두 표준어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전 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짜장면의 어원은 "볶은 장을 얹은 면" 이란 뜻의 작장면입니다. 1986년 국어연구소는 중국식 발음으로 자지앙미엔 (zhajiangmian) 의 zh음을 ㅈ 으로 쓴다 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자장면을 유일한 표준어로 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1950년부터 사용한 짜장면은 틀린 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짜장면으로 발음하였고 마침내 2010년에 국어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라갔습니다. 이후 1년이 지난 2011년 8월에  짜장면도 복수로 표준어로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짜장면1

 

철가방 유래

철가방이라는 말은 1980년대  후반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김미화)가 남편(김한국)이 중국집 배달원을 놀리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중국집 배달원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철가방은 배달통으로 불렸습니다.

 

철가방이 등장한 시기는 1970년대 후반으로 서울의 한 철공소에서 주문을 받아 만들기 시작했어며 기존의 나무로 만든 나무통보다 가벼워 배달이 용이해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철가방보다 가벼운 배달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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